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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 그들이 온다 _ 홍은전
... 그들과 함께 싸우면서도 그들이 가리킨 미래가 실현될 것을 믿지는 않았다. 믿기지 않는 말들이었다. 수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에 묶여 살고 맞아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믿어지지 않는 말을 진지하게 자꾸 반복하는 그들을 믿었다. 그런 이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샌가 믿어지지 않는 세계를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적으로 알았다. 이동권 투쟁이 그랬고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투쟁이 그랬다. 탈시설운동은 바로 그 경험과 성과 위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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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원이 말하다
하나의 시설이 사라지기까지: 프리웰 이사장이 된 탈시설운동가 김정하 _ 홍은전 글
1년 동안 형님들과 함께 서울과 김포를 오가는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싸우면 싸울수록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그러니까 보이는 게 달라지는 거예요. 어떤 발달장애인이 방 안에서 사망했는데 자기가 보기에는 오랜 시간 방치해서 그런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막 터져 나오는 거죠. 노조의 활동은 점점 쇠퇴해서 노동조건에 관한 이슈만 남은 반면 형님들의 활동은 점점 활기차지고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무한정 뻗어나갔어요. 구체적 사건과 계기를 통해 분열하고 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장애 당사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더 이상 시설 직원들과 같은 선상에 있을 수 없는 시기로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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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자립은 없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남은 사무국장 강민정 _ 이호연 글
자립지원을 하면서 거주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똑똑히 봤어요. 처음에는 직원이 해주는 대로 받다가 나중에는 혼자서 영화관을 둘러봐요. 만둣국만 먹던 분이 해장국을 선택해요. 시설에 사는 사람들은 요구를 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휘둘리고 눈치를 보거든요. 자립지원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요구가 많아져요. 시설에만 있으면 시설 사람만 보게 되잖아요. 외부 활동가와 상담사들을 만나서 장애인이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면 확실히 좋아지는 게 있어요. 우리도 경험하는 게 많아지면 그만큼 많은 걸 알게 되잖아요. 시설에선 거주인에게 한정된 경험과 정보만 제공하다보니, 직원들도 그 틀 안에서만 장애인을 보게 돼요. 거주인을 시설 안에 있는 장애인으로만 가둬서 보는 것에 익숙한 거죠. 저도 리프레시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시설을 퇴소해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자립생활주택에 살던 분이 있었는데, 당뇨 관리가 안 되셨는지 3개월 만에 당뇨 쇼크가 왔어요. 응급실에 입원한 이분을 모시고 다시 시설로 왔어요. 이런 경우 자립에 실패했다고 봐야 할까요? 아니에요. 자립하려 했지만 관리가 잘 안 돼서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던 거죠. 탈시설 자립이란 게 시설을 나가서 꼭 어떤 결실을 맺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도했지만 아직 안 된 것뿐이죠. 이번에 이분이 다시 지원주택으로 나가셨어요. 지원주택에 살면서 사회활동을 하고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보게 되셨는지 지금은 당뇨 관리를 하고 계세요. 시설을 나갔다 돌아온 건 자립에 실패한 게 아니라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경험이 쌓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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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인이 말하다
나를 움직인 건 분노였어요: 시설 비리 최초 고발자 한규선 _ 박희정 글
... 저는 낯선 사람에게 말 한마디 못 건네는 내성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투쟁은 어떻게 했냐고요? 행복하게 살고 싶었거든요. 사람처럼 살고 싶었거든요. 투쟁을 하다 죽어도 좋으니 하루만이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었거든요. 그때 나를 움직인 건 분노였어요. 왜 난 이러고 살아야만 하나. 과연 이게 옳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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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 프리웰 사람들이 쏘아올린 탈시설의 지도 _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돌봄이 형벌이 된 사회에서 장애는 죄가 되었다. 시설은 '감옥'이지만 탈시설은 '사형'이 되는 사회는 누군가의 불안과 죄책감을 연료로 삼았다. 죄인이 되어버린 부모는 평생을 돌봄으로 속죄하다 끝내 자신을 대신해 형벌을 받을 사람을 찾아 헤맸다. 죄스러운 존재가 된 장애인은 그저 돌봄 제공자의 의사에 본인의 운명을 맡겼다. 생존에 필수적인 보살핌에 감사하며 그 과정에서 겪는 온갖 고통(가령 멸시, 모욕, 격리, 감금, 분리, 배제, 통제, 착취, 구속, 교정)을 돌봄의 대가로 감수했다. ... 대부분의 거주인들이 시설에 살게 된 이유로 '가족들이 나를 돌볼 여력이 없다'는 점을 꼽았다.
... 탈시설에 관해서는 간단한 칼럼이나 단편적인 보도로만 접하고 있었는데, 무려 탈시설을 이뤄낸 당사자(시설 임직원과 거주인)들의 증언을 볼 수 있어 좋았다.
... 실패한 자립은 없다는 강민정 사무국장의 글도 인상적이었고, 여기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탈시설에 반대했던 거주인의 글도 마음에 남았다. 어찌 보면 누구에게나 실패해도 좋은 기회를 제공하면서 실패하지 않도록 도와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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