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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불타오르는 한류

1장 미디어와 팬덤의 담론 전쟁 - 이지행

 

 ... BTS 및 케이팝 전반에 대한 무의식적인 폄하가 내재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담론 현장에서 공공연하게 인종주의나 제노포비아로 회자되면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서구비평계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래미 시상식의 BTS 후보 배제 문제도 여성과 흑인 배제로 계속해서 논란이 되어온 레코딩 아카데이(Recording Academy)의 전력이 서구 미디어의 '선택적인' 정치적 올바름을 발동시켰고, 그것이 의도치 않게 BTS에 유리하게 작용한 사례라고 유추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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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탄광과 클럽 - 김주희

 

 이처럼 전원산업의 뿌리인 동원탄좌가 개발독재 시기 '석탄증산보국'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내 성적 폭력을 통한 노동 통제 정책을 통해 성장했다면, 호텔사업으로 업종을 전환한 전원산업은 고도성장기 기생관광과 강남 성매매 경제와 착종을 통해 성장을 모색했다. 이들은 마약에 중독되거나 성매매 업소·조직에 연루된 하층계급 여성들의 몸과 성을 동원해 선진국과 내국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직접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성매매를 위한 객실을 대여하면서 막대한 부를 달성했다. 또한 각종 불법 행위에도 불구하고 뇌물, 비자금 등을 통한 정치권과 결탁으로 2017년 르메르디앙으로 화려하게 리모델링을 마칠 수 있었다.

 

 카메룬 출신의 정치철학자인 아실 음벰베(Achile Mbembe)는 푸코의 살게 만들고 죽도록 내버려 두는, 다시 말해 죽음과 삶 간의 분리를 만들어내는 생명정치권력이론(biopolitics)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시신정치(necropolitics)에 대해 말했다. 그는 어떤 실제적인 조건에서 사람을 죽음에 노출하는 힘이 행사되는지 조명하며 탈식민 사회에서 인종을 주요한 표지로 많은 사람이 "살아 있는 죽은 자(living dead)"의 지위를 부여받는 상황을 분석했다. 클럽 버닝썬에 그의 이론을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겠지만, 이용자의 90%가 넘는 여성들이 "살아 있는 죽은 자"의 지위를 부여받아 버닝썬의 사업적 성공을 만들어낸 것은 '살아 있는 시신의 경제'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

 전원산업이라는 재벌 기업은 정치권과 결탁해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탄광촌의 노동자 가족, 유흥업소 여성 등 먼저 희생당해도 괜찮은 존재를 앞세워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8년 글로벌 대중스타 승리의 얼굴을 안전장치로 내세워 여성 대중을 '죽일 권리'를 행사했다는 것이 버닝썬 사태를 다루는 이 글의 요지다. 승리의 얼굴은 21세기 한류 전성기의 새로운 광맥이 되어 한국 여성을 시신화하는 약탈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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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친밀성을 살게요

7장 "항상 함께할 거예요"의 이면 - 장지현

 

 유대감을 갖는 방식과 그를 위한 소비 또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비비아나 A. 젤라이저(Viviana A. Zelizer)에 의하면, 근대 사회에서 친밀성에 경제적인 것이 매개되지 않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의식적인 수준에서 거부되던 팬덤에서조차 점차 노골화되고 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오늘날 돈을 사용하지 않고 아이돌을 사랑하기는 매우 어렵다. 아이돌 팬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러한 점을 자주 호소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팬과 아이돌은 끊임없이 소모된다. 여느 때보다 아이돌과 팬의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대상화는 극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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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저항하는 팬덤과 소비자-팬덤의 모순적 공존 - 김수아

 

 유사 연애를 부정하는 것 같지만 '연애 때문이 아니라 팬 기만 때문이다'라는 담론은 아이돌 팬덤이 아닌 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 요소들 담고 있다. 바로 자연화된 '같은 것'이다. 팬덤도 아이돌도 바라는 성공이라는 가치를 위해 솔직함, 연애, 자율성, 자유, 시간적 여유와 같은 것들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합의가 있다고 팬덤은 여긴다. 그래서 현아와 이던의 열애설에서 현아의 '솔직하고 싶다"는 말은 팬덤 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산업이 팬덤이 공모한다고 말할 때, 이는 단지 산업이 수행해야 할 노동을 팬덤이 무임으로 대신하기 때문이 아니다. 가치를 공유하는 하나의 집행자로서 산업 내에 편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치 공유의 집행자로서 팬덤은 꾸준히 '같은 것'을 추구하지 않는 팬을 외부로 몰아내는 경계 감찰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렇게 가치를 공유하는 위치를 여성 중심의 팬덤이 스스로 '어머니'로 설정한다. 어머니 팬덤과 아버지 기획사라는 탁월한 비유가 나온 이후 팬덤이 아이돌을 육성하고 관리하는 주체라는 인식은 널리 공유되고 있다.

 

... 팬덤은 투여와 산출은 반드시 연결되어야 하며, 산출이 있는 투여만이 가치 있다는 생산성 감각과 욕망을 투사함으로써 자신을 애미의 위치에 두고 희생과 투여를 하는 존재로 의미화한다. 가족 구조 내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던 희생-투여의 구조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어머니 팬덤'이 구성된다. ...

 ... 이경아는 생산성 욕망 내에서는 어머니와 자녀 간의 교환이 오로지 정당한 교환인가를 따지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사랑이 불가능한 체계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이러한 점에서 팬덤은 스타를 사랑하는 애미를 자처하면서도 사실은 사랑이 불가능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사랑이 불가능한 체계란 감정적 차원에서의 열정이나 애틋함, 정감 등이 아니다. 동등한 가치로 교환되지 않는 것을 전혀 상정할 수 없음이다.

 

 디지털 참여의 형식과 육성형 팬덤의 등장은 한편으로는 팬덤의 권력 강화, 산업의 일방적 전횡이 아닌 팬덤의 참여를 요구하는 다양한 변화로 이어졌다.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리고 이미 결정된 능력주의의 규칙에 대한 팬덤의 호응으로 팬덤을 비난할 수 없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하지만 능력주의를 구현하는 팬덤이 스타에게 내면의 욕구를 무시하고 유예할 것을 요구할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팬덤 담론은 재구성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팬덤은 말 그대로 산업에만 유리할 뿐인 희생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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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아이돌의 자필 사과문: 소비하는 팬덤, 소진되는 팬심 - 강은교

 

 케이팝 아이돌 팬덤 문화에서 인정과 소통을 향한 욕망이 젠더화된 이유는 친밀성의 거래가 비대칭적인 젠더 구조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의 친밀성을 구매하는 것은 가부장적 질서를 따르는 행위지만, 여성이 남성의 친밀성을 구매하는 것은 이를 거스르는 행위다. 그러므로 이성애적 욕망을 중심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에서 팬덤의 소비자 정체성은 젠더에 따라 상이하게 구조화되는 양상을 띤다. 남자 아이돌의 여성 팬은 구조적으로 남성의 친밀성 서비스를 구매하는 적법한 소비자로 위치 지어질 수 없기에, 소비자로서의 팬덤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서비스 제공자(아이돌 스타)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즉, 여성 팬의 팬 정체성은 아이돌과 팬덤의 상호 인정에 의해 작동하는 친밀성의 피드백 루프에 더욱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결국 여성 팬이 스타와의 의사소통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투여하는 이유는, 이로써 아이돌과 팬덤이 공유하는 가상적 실재가 봉합될 뿐만 아니라 팬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안정화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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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여덕, 팬덤 그리고 코로나19

10장 다시 만나는 여덕, 소녀시대 GL 팬픽 - 고윤경

 

... BL 팬픽에서 여성은 지나치게 쉽게 발기하는 과잉 성애화된 남자를 응시하고 이들을 매개로 성적인 쾌락을 누리는 주체다. 반면 GL 팬픽은 구태여 불감증의 여성 신체를 써넣는다. 이는 성적 무능의 표시가 아니다. 다만 페니스의 발기가 여성의 쾌락과 오르가슴을 약속하지 않음을 고발하고, 성적 향유를 포기치 않으려는 여성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여성 동성애 판타지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도입된다.

 

 

 

... 흥미로운 분석이 많고 특히 김주희와 김수아의 분석에 공감했다. 사회과학적 글쓰기도 글쓰기 나름일 텐데, 이런 글은 비평이라고 해야 할까? 일일이 구체적인 인용을 달지 않고 자기 논리를 만들어가는 이런 작업도 흥미로울 것 같다.

 

... GL 팬픽에 대한 해석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는데... 기회가 되면 읽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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