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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나의 장애는 몇 점인가요? : 제도 안의 돌봄 공백과 폭력 - 염윤선
... 장애가 있는 몸은 비장애인의 몸과 확실히 다르며,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국가의 '생애 설계 예측'과 다른 시간을 산다. 그래서 제도 내 장애인이 되어야 장애인 생활보호체계 내에 속할 수 있다. ...
...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일들도 손상된 몸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큰 도전이다.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부끄럽지 여기지 않고 자신의 생을 존엄하게 여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제도 내 장애인으로의 편입이다.
나는 2014년 초에 다시 심장장애인이 될 수 있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법이 바뀌어 재심사 기간이 더욱 단축된 탓에, 2016년에 또다시 일부러 부정맥을 일으켜 9개월 내에 세 번 이상 응급실로 실려 갔다. 나의 이런 행동은 분명 내 심장에 무리를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이 과정은 나의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모욕이었다. 이렇게 해서 재심사를 두 번 연속 통과하고 나서야, 나는 영구장애인이 되어 더 이상 재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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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 강제 입원이 아닌, 저항과 대안의 돌봄 - 박목우
처음 정신장애를 경험할 때,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삶에 대한 위협과 손상을 마주하게 된다. 나의 의지와 가치관, 삶의 태도 등이 전면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그리고 의학은 환자가 자신을 포기하고 의학의 언어에 순응할 때에야 비로소 그를 '정상'이라고 판단한다. 그 과정 속에서 당사자는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 때의 '몸'과, 기존 세계에서 가지고 있던 '표정'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간 자신의 밑바탕이 된 기존 세계와 친밀감을 느끼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처한다. 사회의 편견과 구조적 낙인은 이런 당사자의 상태를 악화시키고, 고통을 가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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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장애를 중심에 둔 돌봄사회 : 팬데믹과 장애인의 '돌봄' 그리고 불능화
... 많은 이들이 '포스트 코로나'를 말하며 우리 모두가 코로나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그것은 이미 그 '세계'에 속해 있던 이들의 일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동일한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팬데믹이 선언되기 직전, 세계보건기구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인류가 '미지의 영역'에 들어섞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다시 물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남겨진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남겨졌는가?
... 산소호흡기를 사용하는 아시아계 미국인 장애인 활동가 앨리스 웡Alice Wong은 의료적 '삶의 질' 기준이 자신과 같은 장애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며 "우생학은 여전히 존재하며 우리의 문화, 정책, 행위들 속에 박혀 있다"라고 비판했다. ...
... 공공이든 민간이든 이토록 쉽게 돌봄을 멈춘 데에는 제도가 정지한 순간 이제까지 제도를 지탱해 왔던 '배려'의 전달체계 이외에 이를 대안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사회적 감각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이런 현상을 '윤리의 상실'이라고 일컬었지만, 어쩌면 이것이 돌봄 윤리의 본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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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
의존과 질병의 '정상성' : '셀프서비스'의 시대에서 돌봄이 흐르는 사회로 - 조한진희
결국 자본주의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성공'을 하려면, 누군가를 돌보지 않아야 한다. '성공'한 사람들 중 돌봄 책임을 다하며,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이로부터 무수한 돌봄을 받고 의존은 하되, 자신의 돌봄 책임은 평생 누군가에게 전가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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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돌봄이 노동이 될 때 : 사회적 돌봄노동의 현실과 과제 - 오승은
... 나는 이제껏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서로 좋은 마음으로 눈치껏, 요령껏 맞추며 도우라는 식으로 정부가 사회적 돌봄을 방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돌봄은 한국사회에서 단 한 순간도 사회적이었던 적이 없다.
오랫동안 집 안에 갇혀 여성에게 짊어졌던 돌봄이 갑자기 임금노동이 되면서 그 노동자는 엄마, 아내, 딸의 역할을 일정 시간 대행하는 사람, 그래서 '가족처럼' 일하도록 얼마든지 요구받고 감시당하고 통제될 수 있는 사람 취급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가족 내 여성 구성원이 아니고는 누구와도 분담하지 못했던 돌봄을 갑자기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에게 맡기게 되면서 발생하는 긴장과 불안, 기대, 그리고 억압은 돌봄위기의 새로운 증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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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의료에는 돌봄이 없다 : 시장과 상품을 넘어, 돌봄을 회복한 새로운 의료 - 김창엽
본래 의료와 돌봄은 통합된 것이지만, 현실에서 이 둘은 아주 쉽게 분리된다. 돌봄 또한 하나의 행위가 아니라 점점 더 구분되는 추세를 보인다. 의료와 돌봄이 분리되어 온 경과는 차차 설명할 것이나, 나는 제도가 이러한 현실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여러 의료와 복지제도가 만들어지면서 '국민건강보험-의료'와 '장기요양보험-돌봄'이라는 이분법적 관련성이 확립되었다.
이 글의 초점인 의료와 돌봄의 분리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출범이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장기요양보험이 시작되면서 주로 보장하는 급여(서비스)에 따라 의료와 돌봄 서비스로 나누어 제공하고, 이의 물적 토대인 재정 또한 분리하여 둘 사이를 넘나들지 못하도록 했다. 제도는 당연히 현실을 재규정하고 강화 또는 약화하는 방향으로 재생산한다. 장기요양보험이 제도화되면서 질병 치료는 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국민건강보험으로 해결하고, 일상생활 보조와 수발은 요양원(요양시설)과 주간보호시설, 재가요양 등을 통해 장기요양보험이 책임지도록 구획한 것이다.
현재 의료의 추세와 그 동력이 바뀌지 않으면, 의료 안에서 돌봄이 제 가치를 회복하기는 어렵다. 주로 의료기관 내에서 행해지는 의료와 돌봄은 점점 더 기술에 의존하게 되고 상품에 가까워지며, 그럴수록 시장 논리에 휘둘릴 공산이 크다. 로봇을 활용한 돌봄처럼 상품이 될 수 있는 돌봄은 의료로 편입되는 반면, 상품이 되기 어려운 돌봄은 더 축소되고 주변화되며 개인의 책임이 될 것이다. 돌봄노동을 둘러싼 성별과 계급 같은 불평등 구조도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돌봄 없는 의료가 가진 문제와 그로 인한 고통이 마냥 지속할 거라고 비관하기는 이르다. 나는 고령화로 인해 의료가 변화할 수 있다는 점, 인구 감소 지역에서 '의료시장'이 소멸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회로 본다. 새로운 돌봄체제를 향한 동력은 더 이상 의미, 가치, 윤리 또는 복지와 권리 등에 머물지 않는다. 의료가 돌봄과 결합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은 그 자체로 완전히 다른 사회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특히 돌봄은 새로운 사회의 물적 토대가 될 것이다.
국가권력의 통치성 관점에서 이 문제는 지역 쇠퇴나 소멸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 이를 둘러싼 지역 간 격차와 불평등이 사회문제로 확대되는 과정에 있다. 즉, "지역 균형발전에 아무 관심과 의지가 없다"라거나 "문제를 방치한다"라는 여론이나 담론 그 자체가 통치를 위협하는 요소이다. 노인이 제대로 치료나 돌봄을 받지 못하는 문제도 권리나 삶의 질 차원보다는 "노인을 학대한다", "고독사", "독거노인", "치매 때문에 가정이 깨지는" 현상에 국가권력이 의지와 관심을 얼마나 갖고 있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지 그 여부 자체가 통치성의 대상이다. 통치성의 관점에서 보면, '분만 취약지 지원 사업'으로 실제 분만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그 실적보다, 해당 지역과 다른 지역 주민이 "안심한다"거나 "국가가 최선을 다했다"라고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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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돌봄 없이는 교육도 없다: 교육과 돌봄의 이분법을 넘어, 새로운 '학교'를 상상하기 - 채효정
돌봄이 상품이 아닌 형태로 공급되는 비시장적 공급재가 되면서, 그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저평가 또는 미평가된 돌봄노동이 누군가의 그림자노동으로 묵묵히 수행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돌봄노동의 무가치화가 필수적이다. '돌봄'을 하찮은 일로 폄하해 온 것은 여성을 비롯해 돌봄을 수행하는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오랜 역사 동안 지배 계급이 사용해 온 방식이지만, 자본주의 이후 이러한 '무가치화 전략'은 여성과 자연을 통제하고 그들의 노동을 무상으로 전유하기 위해 훨씬 더 정교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팬데믹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 '필수노동'의 사회적 가치에서 알 수 있듯이, 돌봄노동은 그 자체가 하찮고 중요하지 않아서 무가치해진 것이 아니다. 물건의 수명을 일부러 단축시키는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처럼 의도적으로 무가치화되었을 뿐이다.
... 자기 돌봄이든 세계 돌봄이든, 미니멀리즘이든 웰빙이든, '가치'를 소비로 획득하려는 순간 우리의 신념과 선의는 시장으로 재빠르게 포획된다. 시장화된 돌봄은 더욱 극심한 성별, 계급, 지역 간 돌봄 불평등과 양극화를 초래했다. 부유층의 럭셔리한 돌봄이 특권이자 과시적 사치 소비로 자리매김하며 상징 자본이 될 때, 다른 계급에게는 '없음의 상징'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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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돌봄은 혁명이 되어야 한다: 독일의 돌봄 혁명을 통해 바라본 다른 삶, 다른 성장, 다른 생산 - 안숙영
...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에 접어들어 전 세계적으로 후기 산업 시대로 이행해 가는 가운데, 독일에서도 복지국가의 기초를 이루던 '정상적 노동관계'가 침식되기 시작했고, '노동 없는 노동사회'라는 새로운 국면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이 약화되고,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가 말하는 '동등한 돌봄 제공자 모델'로 이행하게 되었다. 이는 가족 내에서 여성이 수행하는 비공식 돌봄노동을 국가와 사회가 외부에서 지원함으로써 여성들이 돌봄노동에 대한 일정한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된 것을 의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이 모델을 목표로 한 것은 여성의 삶을 남성과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용 없이 여성의 삶과 남성의 삶의 차이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 프레이저는 '동등한 돌봄 제공자 모델'은 여성들로 하여금 집 안에서 돌봄노동을 계속하게 하면서 공적 자금으로 그에 대한 지원을 받도록 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무라카Barbara Muraca가 보기에, 자본주의에서의 경제성장은 사회적인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자연의 재생 능력과 인간의 재생산 활동에 대한 가치절하와 착취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서는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기초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삶에 필수적인 것들을 지향하는 일은 여성주의 논의에서뿐만 아니라 탈성장 논의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무라카는 '자본주의 하지 않기'를 제안하는데, 토지의 이용이나 교육 및 혁신 등과 같은 기본제도들에 무료로 접근하게 함으로써,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라 좋은 삶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전환을 통해 노동, 공간, 시간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실천이 가능해지며, 이를 바탕으로 집단적 자율성을 확립하고 사회적·생태적인 과정에서 직접적·민주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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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국경을 넘는 여자들 : 전 지구적 돌봄노동의 이주 속 인종·젠더·계급 불평등 - 김현미
... 재생산 이주의 급격한 증가 현상은 자본주의체제의 전환, 즉 상품을 생산하던 생산 영역에서 더는 초과 이윤을 확보하기 어려워지자, 식사·위생·건강이나 육체와 감정을 만족시키는, 일상생활의 재생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재생산 영역으로 자본주의가 확장되고 있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이전에는 여성이나 친척들의 무임노동이나 가족 내 돌봄 노동, 국가의 공공복지나 사회적 안전망에 의해 수행되던 재생산 영역이 급격히 시장화되면서 돌봄노동이 교환가치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과거 각 국가 단위로 이루어졌던 사회적 재생산은 이제 전 지구적인 시장경제에서 사고파는 서비스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를 세계적인 자본주의의 '재생산적 전환'이라 부른다. 서비스의 단가를 낮추려는 구매자의 욕구는 곧 이주의 여성화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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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성장
지구의 성장이 멈추는 곳에서 돌봄이 시작된다 : 돌봄과 탈식민은 탈성장과 어떻게 만나는가 - 백영경
... 돌봄을 사회의 중심 가치로 전환하려는 목적이 돌봄의 공백을 메우는 데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돌봄의 문제를 단지 돌봄 부담을 경감하는 해결책으로 접근하게 될 때, 그 해결책은 지구적인 불평등이나 환경 정의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겪고 있는 돌봄의 위기는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과 이를 통해 사회구조를 바꾸려는 노력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돌봄의 현장에서 나와 내가 속한 사회, 나아가 인간 너머의 세계를 돌보려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최일선 공동체의 일원이며, 돌봄의 공백 속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은 새로운 세계를 위한 투쟁의 최일선일 것이다.
... 자본주의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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