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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구에서 우주로
우주바보의 하루
우주정거장에 도착하고 처음 한 일 중 하나는 비행복의 패치를 전부 면도칼로 뜯어내고 새 패치로 꿰매는 것이었다. 내가 바느질을 하고 있으니까 동료 우주인들이 왜 패치를 미리 붙여 오지 않고 우주에서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정부 부처의 이름이 건물 외벽 돌에 새겨져 변한 적이 없는 미국의 우주인들에게는 설명하는 것이 간단치 않았다. 우주에서 실행할 실험 장비에도 모두 '과학기술부' 스티커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다 떼고 '교육과학기술부'로 바꿔야 했다. 지구와의 교신에서 번번이 "그거 다 뗐어? 확실히 다 붙였어?"라고 물어보곤 했다. 지금 같으면 내가 먼저 알아서 다 확인하고 지우고 바꿀 수도 있을 듯한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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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주에서 지구로
우주인 사업의 목적
선발 과정에서 만난 모든 우주인 후보는 지금 자신이 참여한 우주인 사업 이후, 지속적인 대한민국 유인 우주기술 개발을 위한 다른 계획들이 잡혀 있다고 믿었다. 다들 그렇게 여기고 선발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다. 모두가 한국 최초 우주인의 비행이 끝나고 난 후에야, 3년짜리 단기 사업이었고 후속 계획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주정거장에서 가지고 온 실험 결과를 분석할 예산을 어떻게든 확보하기 위해, 또 항공우주연구원 우주과학팀이 뭐라도 할 수 있게 예산을 요청하기 위해 연구인의 담당자분들을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는 정말 우울했다. 꼭 우주과학팀이나 우리와 관련된 연구가 아니지만 예산팀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부처에 가서 발표하고 예산을 따려고 노력하시며 동행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시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따라가기도 했다.
처음부터 우주인 사업 계획이 일회성으로 끝나도록 계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정책 설계자와 정책 수행자가 바뀌었다는 점이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주인 사업을 제안한 정부와 우주인을 우주에 보낸 정부가 다르고, 처음에 이 사업을 계획한 책임자와 사업을 마무리한 책임자가 달랐다. 처음에 러시아와 작성한 계약서에 사인한 사람과 마지막에 마무리하고 악수한 사람이 달랐다. 심지어 부처 이름도 바뀌었다. 사업을 제안하고 계획하고 수행한 사람들은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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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시 우주로
우주가 손짓한다
앞서 언급했듯 스페이스X가 로켓 발사 비용을 극적으로 낮춘 핵심 기술은 발사한 로켓을 재사용하는 것이었다. 로켓이 개발된 지 60년이 넘었는데 왜 그동안은 로켓을 다시 쓴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사실 기술 문제는 이미 해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스페이스X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성공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올드스페이스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스템이었다.
... 정신 없이 축구 보러 다니던 때라 관심이 없었나? 우주인 사업에 관한 기억이 전혀 없지만, 저자가 미국에 갈 때 엄청나게 (나쁜) 말이 많았던 건 기억난다. 나도 우주까지 갔던 사람이 MBA를 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으니까.
... 책을 읽고 나니 저자에게 괜히 미안해졌고... 그래도 정말 멘탈이 단단한 사람이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분이 아니었으면 또 사람 하나 잡을 뻔했다.
... 우주에 가서 제일 먼저 패치부터 교체하라고 하는 게 너무 한국 정부가 할 짓이라서... 중간중간 정말 소름 돋는 순간들이 있다. 정말 정말 고생 많으셨다.
... 그래도 여기까지 와 있는 이 나라를 정말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정말 모르겠다.
... 마지막 장은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후루룩 읽었지만... 사기업을 앞세워서라도 꼭 우주로 가야 할까? 우주를 직접 보고 매혹된 저자에게는 너무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한 기업에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맡기는 게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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