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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_ 메커니컬 터크: 미세노동의 탄생
... 플랫폼들은 노동을 외주화함으로써 노동자의 존재를 장부에서 지우고, 이용자와 투자자, 고객들에게 철저히 숨기면서 실제보다 더 복잡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척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데이터 노동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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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실리콘밸리의 잉여
플랫폼 자본주의는 경제 붕괴의 피해자, 난민, 빈민으로 대표되는 명목상의 잉여 인구를 제물로 삼는다. 다시 말해 건전한 고용에서 배제된 이들에게 초단기 작업을 대량으로 맡기고 거기서 이득을 취한다.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기업은 노동시장의 변두리를 언제든 노동력을 뽑아 쓸 수 있는 예비 창고로 은밀히 사용 중이고, 그곳에 속한 노동자들은 완전히 고용되지도 않고 완전히 실직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상태로 살아간다. ...
1970년대의 위기가 닦아놓은 기반 위에서 1980~1990년대에 유연하고 서비스 중심적인 노동시장이 개척됐다면,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에 대한 대응은 그런 변화의 도상에서 "하등 취업"이라는 또 하나의 지위를 완성시켰다. 하등 취업은 극도로 단기적인 임시 취업, 무보수 노동이 대량으로 요구되는 취업, 심각한 불완전 취업 내지는 노동 빈곤, 가장 불우한 유형의 실업보다도 나은 삶을 보장하기 어려운 취업을 아우르는 말이다.
경제 회복이 무한정 지연된 결과로 탄생한 하등 취업은 2008년 이후 공고해진 일련의 현상을 설명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가 맞닥뜨린 것은 경제적 비극과 정치적 위험이 동반된 불안정의 시대로, 19세기 말엽부터 범북반구에 속한 대부분의 정부에서 막으려고 했던 국면이다. 그 시절에는 세계적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이 비자본주의적 농업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인 대부분이 임금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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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인공지능 혹은 인간지능?
... 서비스 자동화에 이처럼 지속적으로 인간의 감독과 교정이 필요하다면 이제 질문의 초점은 절대적 과잉이 아닌 상대적 과잉으로 옮겨간다. 노동자는 그 과정에 어느 정도로 개입해 있고, 그런 일을 통해 어느 정도로 생계를 감당할 수 있는가?
이렇게 임금, 권리, 능력이 짓밟히는 현실이야말로 현재 자동화가 서비스업에 실질적으로 끼치는 영향이다. 하지만 노동자가 피부로 겪는 현실은 다짜고짜 앞으로는 일자리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외치는 자극적인 말들에 묻혀버리기 일쑤다. 자동화 이론가들은 신중론자와 멸망론자를 막론하고 주로 대량 실업에 대한 논의에만 열을 올린다. 이 같은 일자리의 종말은 연막일 뿐이다. 실제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상은 점점 더 많은 서비스직 일자리가 긱 노동, 미세노동, 크라우드 노동으로 변질되고, 자동화가 주로 노동자와 알고리즘의 협업 형태로 전개되는 것이다. 다만, 미세노동의 경우에는 그 "일자리"란 것들이 거의 다 실직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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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서비스형 인간
요컨대 미세노동 사이트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에 익명성과 유동성이라는 가공할 힘을 부여하고 불합리한 작업 시한을 지키지 못한 작업물에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것을 허용하는 반면, 노동자에 대해서는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그들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여러 수단으로 저항을 봉쇄한다. 그리하여 가뜩이나 부실한 임금 계약을 거의 폐기 수준으로 허물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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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지워지는 노동자
그 결과 노동자는 그늘 속에서 암약하는 알고리즘을 위한 야경꾼으로 전락한다. 자신이 만드는 훈련 데이터가 알고리즘에 투입되어 모종의 결정으로 산출된다는 것 정도만 알 뿐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적으로 불투명하게 남는다. 이 불투명한 공간이 바로 사회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기술을 가리고 있는 블랙박스이며, 그 실체는 대개 권력과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알고리즘이 무엇을 근거로, 누구를 위해, 무슨 목적으로 결정을 내리는지, 요컨대 결정 원리가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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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미래는 배제된 사람들의 손에 달렸다
미세노동자들이 아무리 강한 반발심을 느낀다고 해도 아바타로 인간을 대체하고, 계정 삭제로 갈등을 말살하고, 비밀유지계약으로 재갈을 물리는 법적·소프트웨어적 장치 때문에 그들은 섣불리 행동에 나설 수 없다. AI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되는 것이 늘어날수록 자본은 데이터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노동자의 방해 공작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계학습이 노동 과정에 더욱 폭넓게 개입해 감시와 게임화를 통해 더 많은 갈등을 진압한다면 방해 공작이 발생할 여지는 줄어든다. 노동자의 집단행동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알고리즘으로 짓밟아버리면 노동자의 아우성은 사라지고 소프트웨어 코드의 조용한 콧노래만 남게 된다.
보수가 좋은 일거리를 따내기 위한 국제적 경쟁이 벌어지고 국경을 넘으면 임금의 시세가 달라지는 상황에서는 노동의 경험이 공유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미세노동 사이트들은 성장이 정체되고 과도한 경쟁으로 얼룩진 시스템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시스템 속에서 곪고 곪은 불안정성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반동적 움직임에 의해 점점 더 거센 공격으로 표출될 것이다. 그 공격의 대상은 자본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쉽게 전가할 수 있는 가장 취약한 노동자 집단, 곧 여성과 이민자, 소수자다. ...
... 메커니컬 터크에 관해서는 다른 책에서 접했는데, 자세한 내막을 더 들여다 볼 수 있어 좋았다. 아무리 멋져 보이는 개념도 뒤에 자본주의를 붙이면 진상이 드러난다. 긍정적인 가능성을 상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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