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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에
조심해라. 그것이 주된 메시지였다. 이민자들이 흔히 그렇듯 부모님은 걱정이 많았고, 비극은 모퉁이 하나만 돌면 맞닥뜨릴 수 있다는 걸, 총이나 야구 방망이를 든 무지한 사람 하나면 언제든 가능한 일이라는 걸 어떻게든 내게 각인시키려 했던 것 같다. 사실 통계상으로는 1980, 90년대에 아시아인이 살해당할 확률은 매우 낮았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부모님은 중요한 무언가를 일러 주었다. 그들이 하고자 했던 말은, 우리가 미국인의 의식 속에서 전혀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대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나는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아시아계 미국인에 관해서는 그 어떤 수업에서도 그 어떤 선생님에게도 배운 적이 없었다. 이민자 집단으로서 우리는 편리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쓰고 버리기 쉬운 존재였다. ... 우리의 죽음은 미국의 신화나 이상에 배치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국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우리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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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3 다음 심판은 불
그렇게 대이주 이야기는 떠나지 못했거나 머무는 쪽을 선택한 사람들을 지워 버렸다. 그들은 아마도 가장 궁핍한 사람들,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가장 적었던 사람들, 패배에 가장 익숙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바로 그런 특징들 덕분에, 그들은 견뎠다. 그들은 나이를 먹고 자녀를 낳았으며, 그 자녀들이 마주한 세상은 암울했다. 일자리는 거의 없고 학교는 형편없었다. 폭도와 린치 이야기는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어떤 부모는 자녀들에게 말했다. 결국 너희는 혼자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고.
패트릭과 마일스, 타미르를 포함한 내 학생들은 남겨진 이들의 후손이었다.
... 차를 몰아 델타를 빠져나오면서 그제야 비로소 나는 우리 모두가 공통된 인간성을 갖고 있다는 볼드윈의 주장-흑인이건 백인이건 우리는 서로의 일부이다-이 자연스러운 인간적 감정이 아닌 노력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직시할 수 있는 것만을 타인에게서 직시할 수 있다,라고 그는 썼다. 공통된 인간성이라는 이상, 즉 사랑에 대한 믿음은 올바른 출발점이 아니었다 - 믿음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을 무너뜨리고 완전히 해체해야 했다. 노력을 기울이고 고통에 맞서야 했다. 볼드윈이 그랬듯이, 애써 절망을 다잡아 우리 모두가 불가분의 운명을 함께한다는 믿음을 만들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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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6 사자와 마녀와 옷장
내가 판타지를 고른 건 패트릭에게 도피처가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나니아는 그에게 현실이었다. 패트릭에게 그 이야기가 특별했던 것은 에드먼드가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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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생애
하지만 나는 더글러스가 패트릭에게 촉발한 것으로 보이는 원초적인 심적 반응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공황, 두려움, 충격. 그리고 우울감. 카프카는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은 상처 입히는 책, 재난처럼 우리를 덮치는 책,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도끼처럼 내리치는 책이라고 썼다. 패트릭에게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글은 그런 도끼였고, 그는 산산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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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나는 기재된 모든 항목을 읽은바
재판은 공적 판단을 의미한다. 그것은 모든 걸 송두리째 바꿔 놓은 어느 날 밤의 사건에 대해 합의된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여야 한다. 그러나 졸속으로 진행되는 유죄 협상을 통해 사법제도는 그 사건의 의미를 확정해 버린다. 흑인 거주지에서 두 위험인물 간에 벌어진 싸움이라는 것이다. 100년 이상 그래 왔듯이, 흑인에 의한 다른 흑인의 죽음은 눈에 띄지도 않고 설명도 필요 없는 일상적인 소동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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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10 늦은 봄, 폴라에게
... 누군가를 내가 보기에 그가 담아내야 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우려 해서는 안 된다. 우선은 그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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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1 부활절 아침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하나에서 둘로, "이루어지지 않는" 삶과 이루어지는 삶으로 나뉘게 될까? 한편의 삶은 멈추고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의 삶은 계속되며, 마치 제 의지와 무관하게 꽃을 피우는 나무처럼 버틴다.
그래서 패트릭은 밤마다 마커스에게 이야기하며 그를 살아 있게 한다. 자기가 죽인 그 남자가 마치 죽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패트릭은 잠자리에 들기 전 어머니에게 이야기하며 그녀를 자기 곁, 자신의 머리맡으로 데려온다. 그가 삶에서 가장 사랑한, 그러나 자기가 저버렸다고 생각하는, 이제는 재가 되어 버린 그녀를.
특별히 나라서 패트릭의 인생행로를 바꿀 수도 있었다는 혹은 특별히 패트릭이라서 내게 반응했을 거라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 나는, 사람은 서로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어떤 장소-너무 많은 이들이 떠나 버린 곳-와 어떤 시기-우리가 아직 다 자라기 전, 닳거나 굳어버리기 전-에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때 그런 곳에서 우리는 연약하고 열려 있다.
... 아시아계 미국인과 흑인의 삶과 역사, 인종 차별, 사회적 차별, 읽기, 이상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꿰어내는 훌륭한 책이다. 함께 읽기가 만들어낸 변화는 놀랍지만, 그 변화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사회의 힘이 있고, 그 힘에 저항하는 사람이 있다.
... 이렇게 솔직하면서 또 사려 깊은 책을 만나면, 늘, 얼마나 자신과 주위에 관해 얼마나 숙고해야 가능한 일인지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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