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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양이와 같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4월이었다. 지금의 직장에서 1년 반을 넘겼다. 한 직장을 가장 오래 다닌 기간이 2년 9개월이라 기억한다. 현재가 행복하지 않아서, 습관처럼, 새로운 직장과 환경을 찾아 가려다 실패했다. 실은 직장과 환경을 바뀌어도 내가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준비하는 동안에도 괴로웠다.

 문제는 알고 있으나 답이 틀렸다는 생각을 했다. 내 직장과 환경이 아니라 내 삶의 방식과 정서가 바뀌어야 했다. 내가 책임지고 돌봐야 하는 존재가 생기면 나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다. 내 삶이 지금에서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이 고양이였다.


 2.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집을 나왔다. 축구기자로 일하던 시절 반 년이 좀 넘게 제주에서 재택 근무를 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늘 집 밖에 있었다. 대학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졸업하면서 혼자 산 것만 10년 가까이 된다.

 혼자 잘 지내는 편이다. 누군가와 함께여도 외로울 수밖에 없고, 어차피 외롭다면 누군가와 함께인 것보다 혼자인 게 낫다고 생각한다. 생활력도 강하다. 정리하는 걸 좋아하고 청소와 빨래, 설거지도 즐긴다. 입이 까다롭지 않고 손이 빨라서 음식도 적당히 해 먹는다.

 문제는 혼자만 잘 산다. 제주 집에서는 수면 부족에 시달릴 정도로 예민하고, 내 집에 손님이 오는 걸 좋아하지만 일정 시간을 넘기면 초조해진다. 상대에게는 얼마든지 편하게 있으라고 하지만 정작 나는 상대가 편한지 살피느라 점점 더 불편해진다. 가족들조차 점점 불편해져서 이렇게 살다 보면 정말 나 혼자밖에 살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3.
 이런 내게 고양이를 처방하는 건 고양이에게도, 나에게도 못할 짓일 수도 있다. 고양이는 미지수로 두고, 나는 책임을 다하자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고, 편히 모시고 다니려 운전 면허도 땄다. ('세상에 나쁜 고양이는 없다'는 없으니)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보며 보호자로서의 멘탈도 다졌다. 집 재계약을 마치고 차도 마련하고 여름 휴가와 일본 가족여행도 다녀와서 10월에 입양한다는 계획이었다.

 처음부터 유기묘를 입양한다는 생각이었어서 꾸준히 대전 동물보호센터의 홈페이지를 살폈다. 귀여운 아기 냥이를 보면 마음이 들썩들썩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따지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러다 그래가 될 샴 아이를 봤다.

 

 

 

  • Mirabell 2017/07/14 09:55 # 삭제 답글
  • 푹 자고 있는걸 보니 디엔님과 함께 있을때 안정감을 느끼나봅니다. 몇일전 가족들이 있는 청주에 올라갔었는데 동생네 가족이 진돗개 한마리를 데리고 왔다 해서 가서 보니 귀엽기는 참 귀여웠는데 관리를 하려면 참... 손이 많이 가겠구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네요. 어릴적에는 그냥 마냥 좋기만 하고 학교 마치고 오면 그당시 키우던 강아지와 함께 뛰어놀기 바빴는데 지금은.... 나이든 어른을 훌쩍 넘어 그냥 귀찮음 밖에 느끼지 못하는 나이든 사람이 되버린 기분입니다. 쉽지 않은 선택이거늘...
  •  디엔 2017/07/17 21:02 # 수정 삭제
  • 제가 옆에 있어서 불편해 보일 때도 있고, 옆에 있어서 편안해 보일 때도 있어요. 좀 헷갈리지만 저는 편안하게 있으려고 노력 중... 보호자의 정서를 귀신 같이 안다고 하니까요. 종종 버겁고 힘들기도 한데 제목처럼 그래가 '상상 이상의 고양이'라서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는 거 같아요.
  •  itsmeeli 2017/07/14 22:19 # 삭제 답글
  • 정말이지 그래는 상상 이상의 고양이지.... 하룻밤 잘 때, 밤중에 살풋이 옆에 와서 웅크리고 할짝 핥아주던 따뜻함이 아직도 생각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니 책임이 막중해서 힘든 점도 많겠지만, 그래가 너한테 와줘서 너무 좋고, 그래의 집사가 생각 깊은 너라서 기쁘다. 정말, 우리 모두 오래오래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 엄마도 그래의 사랑스러움을 보면 좀 마음이 풀리시지 않을까? ㅎㅎ
  •  디엔 2017/07/17 21:04 # 수정 삭제
  • 엄마가 그래를 좋아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아예 없는 존재처럼 무시하려는 건 마음이 아파. ㅠ.ㅠ 적절한 타협점을 찾길 바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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