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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등여행기 - 하야시 후미코
파리까지 맑은 하늘
... 나는 자면서 어렴풋이 생각했다. 언제나 진실한 것은 파묻혀 지나가고 다소 연극적인 것이, 으스대는 것이, 상스럽게 비하하는 자들이 어이없게도 어느 나라든 특권을 갖는구나. 프롤레타리아라는 하이칼라 언어를 쓰지 않아도 기나긴 삼등 열차 여행에서 굉장히 착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수없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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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를 대신해
... 나는 사람에게 지치고 세정에 질리면 여행을 떠올립니다. "사람은 그리하여 있는 그대로의 일을 이야기한다. 뜰에서 딴 과일에 대해, 푸른 이끼 사이에서 핀 꽃에 대해." 에밀 베르하렌의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는데, 나에게는 여행을 가서 객지의 허망 속에서 '있는 그대로'를 찾아내는 즐거움이야말로 그리운 천국이기에 여행벽은 점점 심해집니다. 내 영혼은 애수의 소용돌이 안에서만 생기가 넘치는 모양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도 이젠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여행만이 내 영혼의 휴식처가 되어가는 듯합니다.
... 20세기 초 조선(나혜석)과 일본(하야시 후미코)의 두 여성이 유럽을 여행하고 남긴 기록이 실려 있다. 아무래도 외교관 부인 신분이었던 나혜석보다는 가난한 여행객이었던 후미코의 글이 매력적이다.
... 무기력에 빠져있는 기간이라 그 시대의 여성들이 유럽 전역을 누비고(나혜석) 파리에서 가난한 여행자로 버티는(후미코) 기세에 감탄했다. 100여 년 전의 여자들이 나보다 다 진취적으로 살았어... 그럴려고 읽은 책이 아닌데 또 자기 혐오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 그래도 마지막 인용한 글을 보니 다시 여행(정확히는 대만 여행)이 가고 싶다. "내 영혼은 애수의 소용돌이 안에서만 생기가 넘치는 모양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도 이젠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어쩌면 무기력과 우울 말고 애수에 빠지고 싶은지도. 하야시 후미코의 책을 더 읽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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