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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나의 팅커벨
일상은 지루함과 고독함과 외로움과 소외 사이에 안배된 생활의 영위를 위한 노동이다. 열심히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일상을 유지하다가도 어느 날은 그게 미치도록 공허한 것이다. 다 필요 없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아무것도 원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원인을 찾아도 모르겠을 때는 정말 난감하다. 더욱더 침잠하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그래서? 그러면 뭐 큰일 나나? 내게 이유 없이 그런 기분이 찾아온다고 세상이 -그 즉시에는 무너지는 것 같지만- 바로 멸망하진 않더라. 차라리 싹 다 멸망해도 좋겠다 싶은 기분이지만 이건 내가 지금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사회적 질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현존하기 때문에 겪어야만 하는, 더러운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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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연습의 효과는 연습 시간 동안 나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발견할 때 얻어진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기술과 신체 컨디션, 특정한 부분에 재미를 느끼는 나의 흥미,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은 나의 욕망 등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주로 연습 시간 안에 왕왕 발생한다. 그런 순간들을 만나려면 적어도 한시간 이상 다른 잡념이 들어올 여지는 차단해두고 내 몸과 정신을 좀 지루하게 연습 속으로 던져야 한다. 그렇게 쓸쓸함 속에서 홀로 지루함을 견디다 보면, 그때부터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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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축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어떤 사건 때문에, 어떤 순간의 결정 때문에 인생이 뒤바뀌고 사람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그 순간이 너무 강력하니까. 하지만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사실 인생을 바꾸는 건 삶의 이면에 쌓인, 보이지 않는 시간의 축적이다. 옳지 않게 쌓여버린 시간의 축적은 어느새 인간과 사회를 비뚤어지게 만들고 세대를 병들게 한다. 옳게 쌓인 시간의 축적은 그렇게 휘어지는 사회 속에서도 버티며 살아가다가 필요한 순간 빛을 발하는 단단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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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춘향이는 열여섯에 혼인을 하는디
지식은 끊임없이 전통문화와 충돌한다. 존경하는 명인들을 마주할 때면 나의 지식과 지혜들은 현실에 맨몸으로 내동댕이쳐지는 듯하다. 세련된 지식들이 다 소용이 없어진다. 이들이 지나온 시절과 시간을 내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힘겹게 생을 살아온 그들이 해주는 애정 어린 말들에 나의 논리는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잠시 혼란스럽지만, 커튼을 닫듯 덮어두는 것이다. 여전히 명인 명창들에게 시집가라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럼 그냥 웃는다. 우리는 그저 전혀 다른 시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 별명이 이'잘함'인 건 알았는데 정말 많은 걸 '잘함'이셨구나
... 그런 분의 책이 "지루함과 고독함과 외로움과 소외"로 시작되어 놀랐다.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이 비슷한 정서로 괴로워하는 걸 알게 되면 이상하게 위안이 된다. 내 삶이 망해서 내가 이런 게 아니구나, 같은 마음인가.
... 하지만 스스로의 '잘함'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근거 있는 자신감.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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