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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나는 하느님이 필요 없어.' 그녀는 머리를 들면서 생각했다. '설령 비난받고, 멸시당하고, 버려진다 해도, 내가 나 자신에 충실하다면 뭐가 대수겠어? 나는 나 자신에 충실할 거고, 결점이 없게 할 거야. 그들이 나를 경배하지 않을 수 없게 할 거라고. 나를 너무나 경배해서 내 몸짓 하나하나가 성스러워 보일 정도로 말이야. 언젠가 나는 내 머리 위에서 후광을 느끼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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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안토니오가 호수에 빠졌을 때, 그가 앞장서서 공격했을 때, 나는 그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했기 때문에 감탄했어요. 그러나 당신에게 용기란 무엇이죠? 나는 그의 관대한 성격을 좋아했어요. 당신은 계산하지도 않고 재산, 시간, 수고를 주지만, 당신이 희생하는 것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만큼 당신이 살아야 할 인생은 무수하게 많아요. 나는 그의 자부심도 좋아했어요.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으면서 자기 자신이 되기를 선택한 사람, 그 점이 아름다운 거죠. 당신은 말이죠, 예외적인 존재이고, 당신은 그것을 알아요. 그것이 나한테 와 닿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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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얼마나 편리한 말입니까! 현재의 희생은 중요하지 않았던 겁니다. 세상은 먼 미래에 있었습니다. 화형, 학살이 뭐가 중요했겠습니까? 세상은 다른 곳에, 늘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오직 사람들만이, 영원히 갈라져버린 사람들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들을 갈라놓는 것은 바로 원죄죠."

 황제가 말했다.

 "원죄요?"

 내가 말했다.

 그것이 원죄였을까? 혹은 광기? 혹은 다른 어떤 것? 나는 루터,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사들, 화염 속에서 노래하던 재세례파 여자들, 안토니오, 베아트리체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어떤 힘이 있었다. 그 힘이 내 이성의 예측들을 어긋나게 했고 내 의지에 대항해서 그들을 지켰다. 내가 말했다.

 "우리가 화형에 처한 이단파 수도사가 죽기 전에 제게 말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선이 있을 뿐이고, 그것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요. 그게 사실이라면, 지상에 군림하려 드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의 선은 오직 그들 자신한테만 달려 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선이 있을 뿐이고, 그것은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거예요."

 카를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다른 자들의 구원, 아니면 자신의 구원만이라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구원뿐이죠, 하느님의 은총으로요."

 그는 손을 이마에 댔다.

 "나는 힘으로 다른 자들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 내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바로 거기에 내 잘못이 있었던 거죠. 그것은 분명 악마의 유혹이었어요."

 "저는 말입니다, 행복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닿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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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아이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미소를 절절히 내 가슴속에 넣어뒀다. 아이의 얼굴에 떠오른 그 빛 때문에 기계의 웅웅 소리, 도료 냄새, 그 모든 것이 바뀌어 시간은 더 이상 편편한 덮개가 아니었다. 땅에는 희망과 후회가 있고, 증오와 사랑이 있었다. 결국 죽겠지만 우선 그들을 살고 있었다. 개미도 돌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그 미소를 통해 마리안이 다시 내게 신호하고 있었다. '그들을 믿고, 그들과 함께 있고, 사람으로 남아 있어.' 나는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얼마 동안이나 더 이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의 미소와 그들의 눈물이 더 이상 내 속에 어떤 메아리도 일으키지 못할 때, 나는 무엇이 될까?

 

 "우리는 미래가 우리 행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죠. 안 그러면 모든 행동이 불가능할 거예요. 우리가 끌어가기로 결정한 대로 우리 싸움을 끌어가야 합니다. 그게 전부죠."

 나는 카르모나의 성문을 닫아건 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난 그 점에 대해 많이 심사숙고했어요."

 그가 덤덤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죽기를 택하는 것은 결국 절망 때문이군요?"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절망하지 않아요."

 "희망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예, 만일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요."

 "나는 어떤 확신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내가 말했다.

 "나에게는, 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죠."

 그가 말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된다는 거."

 내가 말했다.

 "예, 그걸로 충분하죠. 그걸로 살아갈 만해요. 그리고 죽을 만하기도 해요."

 

... 그들은 오만한 사람이나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이해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과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운명을 실현하려 한 사람들, 자유로운 사람들이었다.

 

 

 

... 독서 모임에서 읽은 책. 불멸자(죽지 않는 자)인 주인공의 생애를 천 년? 정도 따라간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왜 필멸자인 우리가 불멸자와 같은 피로와 지겨움을 느끼는지 의아해하며 한탄했다.

 

... 표시해 둔 부분을 옮기면서 생각해 보니, 그는 결국 자신이 자유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인간이 될 수 없음'에 절망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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