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 바꾸기 - 김지승
의자 움직이는 여성성의 거처
... 내 자세며 마음 상태가 어쩐지 내가 자꾸 나에게 벌을 주고 있는 기분이었다. 도롱이 할머니는 그게 다 태어나 받은 자기 자리가 줄곧 불편한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고 했다.
우리는 의외로 자신에게 잘 순응하지 못하는데 예외적이게도 처음을 선사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한시적이나마 그게 가능해진다. 처음이었다고 했다. 안/한나처럼 이상한 사람은. 나는 그 지점에서 마음 놓고 웃었다.
"이상한 여자들은 이상해요. 잠깐 본 것뿐인데도 잊기 힘들어요."
"자기 의자를 들고 다니는 여자들이니까요. 이상한 여자들은 자기 의자에 나를 꼭 한 번씩 앉게 해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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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 연결이 균형이 되는 감각
... 내가 아이의 머리 위에 모빌을 달아주면 친구의 삶 안에도 모빌이 달리는 거였다. 그것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이의 취약함에 응답하는 사물이 있다. 모빌이 그러길 바라면서 나는 아이와 친구, 그리고 모빌을 함께 떠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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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기억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항상 술래였다
... 엄마들의 이중 화법과 딸들이 자동번역은 비가시적 억압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소모적 기술이다. 그러니 너무 심심해서 오늘은 엄마와 한판 해야겠다가 아니면, 저런 말에 "어, 그럴 생각이었어요"라고 답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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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아무리 울어도 깨지지 않는
바닷바람이 세찬 곳이었다고 하니 돌아온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랜 기다림의 상징인 석상 옆에서는 축원 같은 돌들이 쌓였다가 뒹굴고 작아져 사라졌을 뿐이다. 돌의 운명이 참 가깝다 느끼면서 나도 돌 하나를 돌탑에 보태고, 뒤따라 케디와 순심 씨가 그러는 걸 봤다. 이상하게도 내가 한 내려놓음보다 그들의 내려놓음에 마음을 더 싣게 되던 순간, 순심 씨의 기도인지가 혼잣말인지가 들려왔다.
"애기들 맘에는 돌 같은 거 안 쌓이게 해 주소. 내가 많아 알아. 돌은 아무리 울어도 안 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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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 우리가 '우리' 밖으로 씻겨 내려가
... 정지된 몸으로 불행한 소식을 들으면 너무 깊이 각인된다. 인간의 몸은 가만히 있으면 고체 같고, 움직이면 액체 같고, 잠들면 기체 같다. 불길함 앞에서 몸을 흔들고, 괜히 제자리에서 뛰고, 기지개를 켜고, 방 끝에서 끝까지 여러 번 왕복하면서 자신에게 액체의 유동성을 조금 더 추가해 놓으면 소식은 소문으로 소문은 근거 없는 이야기로 몸을 통과해 흘러간다. P는 비슷한 이유로 몸을 물에 담근다고 했다. 비누로 몸을 문지르고 머리를 감고 나와서 그런 씻김의 연속성 안에 나쁜 소식을 끼워 넣는 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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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어느 날 눈을 벗을 때
... 감각은 세계를 인식하고 그것과 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능력이다. 감각을 상실하면 신체 내부와 외부 환경의 변화를 감지할 수 없게 된다. 감각에 따른 의식 변화에도 지장이 생긴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건 기억인데 그조차 흐릿해진다. 나는 그들이 느낄 불안의 크기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심장이 폭력적으로 투과한 시간이 남긴 것. 매일 조금씩 그무러지고 지워지는 세계와 자신의 최후를 애써 외면하면서 그들은 거울 앞에서도 흐린 눈이다. 그 눈. 몇 개월 후 병원 화장실 거울 속에서 하얗게 사라지던 내 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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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쇠락과 쇄락 사이
... 나이 듦에 대한 불안을 팔고, 불안에 필요한 온갖 약을 팔고, 약을 팔기 위해 재차 새로운 불안을 발명하는 이들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거래하는 미래를 나는 살 수도 훔칠 수도 없었다. 그 사실은 아무리 멀리 떠나도 변하지 않았다. 불안보다 강렬한 감정을 좇는 것으로 잠시 잊거나 좀 오래 잊거나 할 뿐이었다. 불안보다 힘이 센 감정. 그걸 좇다 보니 여성노인들 옆이었다. 그들 곁에서 죽음의 기분이나 밤의 기분이 현저해지지 않을까 했다. 그들이라면 죽음이든 밤이든 능숙하게 다룰 줄 알 테니까. 그러나 마담 J와 그의 친구들에 따르면 늙음이야말로 가장 불안한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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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과 얼음 부재라는 강력한 존재
... 이제는 어떤 상실이, 비극이, 부재가 먼저인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겹겹의 애도에서 우리는 자주 잊었다.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면 무엇보다 먼저 침묵해야 했다. 그걸 자꾸 잊고 우리는 먼저 울었다고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