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들의 노래 - 비마이너 기획, 홍은전 지음, 훗한나 그림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 | 박길연 이야기
... 활동하다 보면 지치고 힘들어서 도망갈 구멍을 찾기도 하지만 이런 죽음을 겪으면 슬픔과 분노가 차올라서 다시 힘을 내게 돼요. '나는 살아 있으니까 이렇게 지치기라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지칠 수가 없어요.
... 몸에 대한 건 남이 모르는 게 당연해요. 장애인끼리도 모르고 같이 사는 사람도 알 수가 없어요. 몸이라는 게 뼈와 관절, 근육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게 어느 정도로 손상되었는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관찰이 필요하고, 물어보는 게 필요하죠. 어떤 사람이 자기 몸이나 장애를 이유로 뭔가를 거절하거나 부탁할 땐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지를 결정할 권리를 그들에게 돌려주어야 하며 설사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지라도 그것 또한 그들 자신의 것이지 남이 빼앗아선 안 된다는 듯이 길연은 말했다. 다만 길연은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아서 행복했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졌다고 말할 뿐이었다. 어쩌면 무수히 후회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해도 그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후회 역시 소중한 권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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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기까지 | 박김영희 이야기
우린 그렇게 다른 역할을 수행했죠. 물론 힘이나 속도를 추구하는 남성 중심적 장애인 운동에서 분명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어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건 너무 중요한 일이에요. 공감은 힘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관계와 문화를 바꿔나가는 운동을 지향했어요. 하지만 이 몸이 이동할 수 없다면 아무리 좋은 문화를 가졌다 해도 확장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죠. 제도의 변화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에요. 남성 중심적 운동에서 모든 걸 다 실현해낼 순 없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보태 균열을 내고 좀 더 평등한 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한 일일 거예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더 잘 보는 것이 분명히 있고요.
... 힘들고 외로울 때가 많았죠. 하지만 지금 내가 뭔가 하지 않으면 나 같은 장애인들이 이 사회에서 살아갈 방법이 없어요.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면 내 모든 것을 쏟아야 할 만큼 나는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이죠. 우리가 살기 위해 세상이 바뀌어야 하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외로움이 수반되는 것이라면 받아들여야겠죠. 상처받을까 두려워서 사랑을 하지 않을 수는 없듯이요. 돌아보니 운동과 연애를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에 나는 영희가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라는 질문과 그 질문이 불러올지 모르는 어떤 파국을 두려워했던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이야기를, 영희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임을 깨달았다. 선생님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긴장 속에서도 영희는 빠르게 답을 생각해냈고 이어질 친구들의 질문에 대처할 방법까지 준비해두었다. 그러나 질문은 영희 앞에서 멈췄다. 영희를 슬프게 한 것은 질문의 가혹함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빠짐없이 던져지던 그것이 영희의 눈앞에서 한군간에 사라져버려서 자신이 영영 대답할 방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영희의 인생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이것이 너무나 주체적인 존재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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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내 손에 움켜쥐고 | 박명애 이야기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내 몸에 등급을 매기고 내 삶의 시간을 판정한다는 것인지 억울하고, 저 사람들이 휘두르는 칼날에 베일까 이리저리 피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너무 자존심 상해요. 내 삶의 칼자루를 왜 내가 쥐지 못하는지, 왜 나는 칼날을 붙잡은 채 이렇게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지, 왜 우리에겐 무엇 하나 그냥 주어지는 게 없고 이 모든 걸 '극복'하며 살아야 하는지, 왜 우리는 긴급구제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지 서글프고 화가 나요. 이 서비스가 줄어들면 딸에게 그만큼 기대야 하고 그럼 딸이 자기 삶을 줄이고 조정해야 해요. 그렇게 사는 건 아주 힘든 일인데, 내가 낳았을 뿐이지 자식도 남인데, 남의 인생까지 그렇게 만드는 게 괴로워서 참을 수가 없어요. 나한테서 안 태어났으면 더 멋지게 살 수도 있었는데 더 해주지는 못할망정 나 때문에 뭔가를 포기하게 만든다는 게 너무 미안해요. 짐이 되어 살 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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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인간의 탄생 | 박경석 이야기
6개월 입원해 있다 퇴원한 뒤 5년 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물어요. 이렇게 운동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 5년 때문인 것 같아요. 굉장히 힘들 때도 그 시간을 생각하면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때만큼 밑바닥을 헤맨 적이 없으니까. 살다 보면 슬프고 힘들 때가 있죠. 하지만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살아 있다는 걸 느끼는 거잖아요. 그때는 고통스러운 것도 힘든 것도 없었어요. 삶이 무감각했죠. 시체의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으니까 고통이라도 느끼고 싶어서 혼자 있을 땐 칼로 허벅지를 긁거나 담배로 팔뚝을 지져서 항상 퉁퉁 부어 있었어요.
... 사회복지 쪽에선 노동 능력을 광범위하게 평가해요. 노숙인 자활 분야에서는 조금이라도 노동 능력이 있으면 '일(자활)해서 먹고살라'며 소득을 보장해주지 않아요. 중증장애인의 경우는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이 돼요. 하루 종일 일을 시키고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문제가 없죠. 장애인연금은 장애1급·장애2급·중복3급 장애인에게만 주는데 이들은 전체 장애인의 40프로에 불과해요.
이 기준을 결정하는 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사람에 대해 갖는 태도예요. 단순히 복지의 문제가 아니죠. 이 기준을 새롭게 만드는 건 전쟁일 것이고 실제로 전쟁으로 만들어야 해요. 우리는 앞으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향한 극한의 투쟁을 해야 해요. 자본주의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폭로해내면서 싸워야 하죠. 인간의 노동 능력을 평가하는 자본주의적이고 비장애인 중심적인 기준을 어떻게 박살 내는가는 아주 큰 전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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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은 삶을 구할 수 있을까 | 노금호 이야기
저는 요즘 전장연 운동에 박탈감 같은 걸 느껴요. 장애인운동은 멋있고 급진적이죠. 낭만이 있어요. 그런 면을 저 또한 좋아하고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모습 때문에 현실이 가려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더 처절한 밑바닥, 삶의 어떤 지긋지긋함이 있는데 그것이 잘 안 보인다는 느낌이요. 투쟁판에 있으면 생동감이 있었어요. 존재가 존재로서 인정받는 것 같죠.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존재로서 가치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지금의 제 상황이 그래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만약 내가 지금 정도의 사회적 권력을 갖지 않았다면 과연 생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회의적이에요.
... 이런 말들은 읽으면서 감동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대로 체득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몸으로 쌓지 않은 서사는 눈만 스쳐 간다. 그래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지...
... 이 '살아있는' 사람들 뒤에서 커다란 사랑을 보았다면 오독일까?
... 노금호 님의 이야기는, 비슷한 주제의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또 귀했다.
... 홍은전 작가님의 후기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