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 김소민
1부 왜 쓰는가
슬픔은 적금
... 글쓰기는 불가해한 세상을 이해하려는,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발버둥이다. 그 발버둥마저 없다면, 대체 이 난리굿 삶이 다 뭐란 말인가. 억울해서 신에게 내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행복은 만끽하면 된다. 불행은 뜯어보고 이유를 찾게 된다. 납득이 되어야 견딜 수 있으니까. 그러니 억울할수록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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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글쓰기의 조력자들
내 안에 비평가 잠재우기
비판하는 데는 쾌감이 있다. 남을 평가하는 일에는 중독성이 있다. 그건 권력이다. 상대를 비판하면 자기가 높아지는 기분이 든다. 어느 순간 비판의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도 비슷할 것이다. 인성에 문제 있는 사람만 권력의 맛에 빠지는 게 아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경계를 넘게 된다. 이런 경계를 자기가 자기를 비판할 때도 넘을 수 있다. 자신을 패면서 자기의 강함, 선함을 느낄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을 팰 수 있을 만큼 객관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야'라는 도취에 빠진다.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다. 그러면 인생을 같이할 수 있는 친구를 잃게 된다. 자기와 글쓰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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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할 때
자기 생각을 말하는 건 왜 중요한가? 사람이 가장 상처받는 순간은 물건으로 대해졌을 때라고 생각한다. 물건에는 개별성이 없다. 쓰다 낡으면 다른 걸로 바꾸면 그만이다. 모든 것에 순위를 정하는 한국에서는 인간이 물건처럼 다뤄진다. 가격표가 붙는다. 값은 원래 물건에만 붙이는 것이나 그 값이 아무리 비싸도 인간에게 붙으면 모멸이다. 노동력을 상실한 뒤 '나'는 나일 수 있을까? 잘 쓰건 못 쓰건 내 글은 내가 고유한 존재라는 걸 증명한다. 못 써도 그런 방식으로 못 쓸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누구도 뺏을 수 없고 대체 불가능하다. 우리에겐 '개별자'로서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소망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쓰는 괴로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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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어떻게 써야 하나
또라이들의 선물
고품격 유머는 사회적 약자로 분류된 사람들의 무기다. 동정에는 비윤리적인 데가 있다. 동정 '당하는' 대상을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시선 때문이다. 동정의 대상은 객체이지만, 웃기는 자는 독립변수이자 분위기를 끌고 가는 주체다. 동정이나 무시 받는 그 지점을 낚아채고 점유해 유머로 바꿔버릴 수 있다. 유머는 여유 있는 사람만 칠 수 있는데 여유는 강한 자의 태도다. 사회적 '약자'는 유머 세계에선 '강자'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삼는 유머는 비장애인이 하면 불쾌하다. ...
... 생각보다 본격적인 글쓰기 책이라서 당황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저자 특유의 태도가 여전해서 즐겁게 읽었다. 특히 위에도 옮긴 비판과 관련된 부분은 뼈에 새길 만하다. 점점 경계를 자주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