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후기 - 오경철
1부
지리멸렬을 견디는 일
편집자는 교정 교열을 하면서 원고의 갈피를 잡는다. 그러느라 삶의 갈피를 놓치기 일쑤다. 끼니를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하듯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 편집자다. 자주 잊곤 한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책은 그런 사람들이 만든다는 것을. 그들이 어디로 도망 못 가게 발목 잡는 이런 일이 어쩌면 편집자의 본령이 아닐까 더러 생각하는 나는 이제 옛날 사람일 것이다. 그만 불을 끄고 쉬어야 하는 때, 옛사람들이 쓴 고고한 문장을 읽으며 가만히 눈이라도 씻어야 나날의 일을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 사람. 그러나 그렇게 눈 씻는 일이 또한 나름의 내밀한 도락이 되어버리는 사람. 까무룩 피안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문장들을 하루하루 기다리는 사람.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남의 글을 고치고, 바로잡고, 다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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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우리말은 아름답지 않다
한국어는 아름답지 않다. 영어도 중국어도 러시아어도 마찬가지다. 언어는 아름답지 않다. 우리말은 우리나라 사람이 쓰는 말이다. 단지 그러한 것일 뿐이다. 한국어는 지구라는 행성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 가운데 하나다. 게다가 사용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만약 한국어가 아름답다면, 나아가 아름다운 언어가 존재한다면, 반대로 한국처럼 아름다운 언어와 달리 아름답지 않은 언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언어가 있을까? 혹시 그런 언어를 알고 있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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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그만두기
... 일을 하고 회사에서 받는 돈이 사실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어떤 현상을 견디는 일의 대가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어쩌면 노동이 아니라 인내야말로 조직 생활자들의 실질적인 생계유지 수단일지도 모른다. 견디지 못하면 먹고사는 일이 고달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