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프고 아름다운 코끼리 - 바바라 포어자머
Part I. 코끼리와 함께 산다는 것
무기력이 삶을 덮칠 때
... 경험상 "일단 ……만 하고 나면"이라는 생각을 너무 많이 반복하는 것도 우울증의 증상이다. 삶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가 바뀌고, 그중 무언가는 언제나 (아직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게 마련이다. 자신의 삶과 거기 내포된 행복감을 '일단 ……만 하고 나면'이라는 말과 함께 항상 미루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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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울할 자격이 없어
... 폴매셔조차도 우울증에서는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의 경계를 긋기가 극도로 어렵다고 했다. "의욕 저하, 슬픔, 외로움, 불면증과 같은 우울장애의 고전적인 증상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를 질병으로 보느냐는 사회에서 합의한 관습에 따릅니다. 이러한 정의는 여러 증상이 장기간에 나타나야 한다는 의미이지만, 그 기준은 임의적입니다. 어째서 14일 동안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은 괜찮고, 15일째부터는 우울증이라고 봐야 할까요? 기본적으로 건강한 사람과 환자 간의 경계는 개인마다 고통과 도움이 필요한 정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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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삶은 침대밖에 있으니까
난 당신의 상담사가 아니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전문적인 도움을 거부하고, 자신의 요구사항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부담을 줄 때 가족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건, 의사와 상담사의 역할을 직접 떠맡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 우울 시기에 놓여 있다면 더더욱 안 된다.
그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전문적인 도움을 구하라고 당사자에게 계속 요구하는 것이다. 심지어 단호하게 최후 통첩을 날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 당사자가 끝까지 전문가의 도움을 절대 받으려 하지 않는다면, 가족으로서 그 구멍을 메워줄 의무는 없으며 선을 그어야 한다. 질병에 대한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치유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도움을 주고, 동기를 부여하고, 안심시킬 수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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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슬픔과 우울증은 다르다
유산의 경험
나는 "그건 정상이야"라는 문장을 오랫동안 "그런 일로 흥분하지 마. 울 일이 아니야"라는 뜻으로 오해해왔다. 절대 그런 뜻이 아니다. 살면서 부딪치는 많은 일은 '정말 많은 사람이 겪는 일'이라는 점에서 정상적이다. ... 물론 그럼에도 무척이나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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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별
슬픔에 대처하는 전략은 정말 많고 다양하다. ...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는 (당연한 말이지만, 타인을 다치게 하지 않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고통을 놓을 수 있었던 반면 나는 30년 넘게 자비네의 죽음 때문에 괴로웠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 어린 날의 슬픔을 달래줄 어떤 장소도, 의식도, 아니 그냥 아무것도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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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가끔 행복했고 자주 우울했던 이들에게
나와의 거리 두기
이제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이 제멋대로 굴면 그 부분과 거리를 둔다. 거울 앞에 서서 외모가 자신의 행복을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그 자리를 벗어난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자살 충동이 행패를 부린다면 이 사실을 기억하자. 내 생각이 곧 내가 아니며, 내 감정도 내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나의 신체, 정신,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내 몸과 장기, 내 지식과 생각, 나의 감수성과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의 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