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사 사회 - 송병기

TheEnd 2023. 5. 15. 19:35

들어가며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죽음의 문제는 마치 주사위 놀이 같다. 먼저 '보이지 않는 손'이 노화, 질병, 돌봄, 죽음을 새긴 주사위를 던진다. 그 결과는 '우연히' 누군가의 일상에 들이닥친다. 각자 그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또 다른 주사위를 던진다. '행운'을 기대하면서 던지는 주사위다. 최대한 천천히 늙기를, 덜 아프기를, 깔끔하게 죽기를 바라며. 또 착하고 경제력도 갖춘 가족이 나를 잘 돌보기를, 다정하고 친절한 의료진을 만날 수 있기를, 말 잘 통하고 헌신적인 간병인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주사위를 던진다. 그런데 '만약' 주사위 던지기의 결과가 나쁘거나, 더 이상 던질 주사위가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사위 놀이는 양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하나는 우연, 운, 기회, 가능성을 뜻하고, 또 하나는 투기, 모험, 위험, 사행성을 의미한다.

---

 

1부 각자 알아서 살고, 각자 알아서 죽는 사회

2. 노인 돌봄 - 노인은 국가의 짐인가

 

 ... 국가는 '정상 가족'을 기대하기 힘든 시대를 위기로 상정했고, 발전에 쓸모 있는 인구와 쓸모없는 인구를 분류했다. 의존적 노인은 이러한 정치적 상상과 인식 속에서 선별되고 의료적, 생물학적 차원으로 규정된 '인구'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의존적인데, 마치 노인만 의존적인 존재인 것처럼 딱지를 붙인 셈이다.

---

 

6. 말기 의료결정 -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까

 

 질병이 빈곤으로 연결되고 빈곤이 질병으로 이어지기 쉬운 사회에서 보호자의 돌봄은 환자가 죽음(생물학적이든 사회학이든)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개인의 돌봄이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강조는 자칫 '환자에게서 손을 떼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오히려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타인의 돌봄을 딛고 섰을 때 비로소 행사되는 것이다.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돌봄의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환자의 목소리가 공적으로 울려 퍼지려면 '환자의 자율성'만 강조할 게 아니라 그의 일상을 떠받치는 '돌봄'을 정의롭고 평등한 방식으로 재배치해야 한다.

---

 

7. 안락사 - 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죽음을 앞당기고 싶어 할까

 

...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안락사의 '효과'가 아니라 오늘날 안락사가 논의되는 '방식'이다. 안락사가 전제하는 고통은 왜 개인적 수준(통증, 장애, 질병, 간병, 부모, 장식 등)에서만 논의되는가? 개인의 고통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맥락은 어디로 증발했는가? 안락사에 관한 기존 논의는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관계와 정부의 책무를 제거하고 그 자리를 법적, 윤리적 담론(혹은 다툼)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안락사에 대한 열망, 바꿔 말해 죽음이 존엄, 권리, 고통의 문제가 된 현상은 의미심장하다. 그 열망은 불평등하고 취약한 삶의 조건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안락사 논의는 의료결정에서 정치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 '안락하게' 죽을 수 있다.

 

 

...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원론적인 결론으로 장이 끝날 때마다 답답해진다. 각자도생 사회에 각자도사는 당연한 것일 테고, 각자도생 사회를 바꾸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는데... 반 농담 반 진담으로 노후대책 삼아온 안락사도 답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는 1부에서 대략 다뤄진 듯하고, 2부(보편적이고 존엄한 죽음을 상상하다)는 9장(무연고자)을 빼고는 다소 느슨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