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 양영희

TheEnd 2022. 12. 28. 11:05

작가의 말 |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가족 영화를 만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만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가족이란 사라지지 않고, 끝나지도 않아. 아무리 귀찮아도 만날 수 없더라도 언제까지나 가족이다' 그런 실감이 나를 새로운 해방구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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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국은 평범한 사람들

미국 놈, 일본 놈, 조선 사람

 

 나는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직계가족에서도 벗어나고 싶은데 타인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라니, 제정신인가. 아버지의 딸, 오빠들의 여동생, 여성, 재일코리안 같은 명사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족을 향해 카메라를 든 이유도, 도망치기보다 그들을 제대로 마주 본 다음에 해방되고 싶어서였다. 영화 하나 만들었다고 무엇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손목 발목에 주렁주렁 차고 있는 그것들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다. 알아야만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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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밖에 못 하지

 

 아이들을 북에 보냈다고 후회할 여유는 없었다. 어머니는 그저 세 아들이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졸업한 다음에 건강히 일할 수 있도록,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가족들이 웃는 얼굴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살겠노라 다짐했다. 손주들이 태어나자 어머니의 결심은 신념이 되고, 다시 집념이 되었다. 무언가에 씐 것처럼 소포를 보내고 북을 방문하는 어머니에 아버지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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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카메라를 꺼주세요

매일 잘 먹고, 조금 웃자

 

 가족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큰 책임감이 밀려왔다. 언젠가 어머니가 몸져눕는다면, 어머니에게 치매가 온다면 어떨까. 어머니의 생애 마지막 순간들이 어떨지는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었다. 나의 감정, 나의 도량 그리고 나의 경제력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완벽하게 간호하려는 어머니를 보조하면서 내 삶은 이미 파탄 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력이 없었다. 언제쯤이면 혼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가족에게서 해방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또다시 죄책감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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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옆에 누워

 

 그날도 아버지가 "이제 됐어. 죽여줘"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무슨 바보 같은 말인지 원"이라며 세탁물을 들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왜 못 죽게 해. 이런 몸이 됐는데 어째서 죽으면 안 돼"냐며 나를 몰아붙였다. 말문이 막혔다. 아버지를 설득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조금 흥분해서 심각한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으면 영희가 아버지!하고 부를 사람이 없잖아. 그럼 내가 쓸쓸해. 영희 아버지는 하나뿐인데, 다른 사람은 될 수 없는데. 아버지가 죽으면 내가 곤란해. 그러니까 영희를 위해 조금만 더 힘내요." 잠시 생각하던 나는 아버지를 향해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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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든 행위가 기도였다

닭 백숙을 나눠 먹으며

 

 가족이란 혈연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믿게 되었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기능하는 관계성이 있어야 집합체가 서로 가족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비록 당사자는 될 수 없지만,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윤곽 정도는 알고 싶다는 겸손한 노력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알고자 하는 것이다. 사건과 사실을, 감정과 감상을,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상상과 망상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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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의 노래

 

 살아가다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픈 상황들을 조우한다. 그 순간을 카메라가 포착할 때 기적 같은 장면이 탄생하고, 그 작품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 잔인한 이야기다. 이제 와 무슨 말인가 싶지만.

 

 

 

...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볼 때도 그랬지만, 가장 개인적인 고민까지 솔직히 드러내는 태도에 놀라게 된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을 보고 영화 속의 정보량만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이 영화에 왜 그리 감탄하는지 어느 정도는 놀라던 참이었는데, 책을 읽으니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까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 그리고 <굿바이, 평양>을 꼭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