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노동 - 데니스 뇌르마르크 & 아네르스 포그 옌센

TheEnd 2022. 10. 7. 12:24

1부 사라진 시간

1장 지나친 노동량

 

 그런데 이런 테일러 체제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다. 그의 발상이 현대 일터의 구석구석까지 널리 퍼짐에 따라, 직원이 하는 일을 감시하는 게 주 업무인 관리직 수가 늘어났다. 사무실도 그랬지만 특히 공장은 점점 더 많은 관리직으로 채워져 점점 더 많은 양의 관찰 일지가 작성되었다. 그것들을 타자로 쳐서 정리해줄 비서가 점점 더 많이 고용됐고, 꼼꼼히 점검해야 할 서류와 사안이 늘어남에 따라 경영진 역시 점점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해졌다. 즉, 테일러의 방식은 공장의 일을 줄이고 대신 그 일을 사무실로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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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텅 비어가는 노동

 

 파울센에 따르면 직원은 할 일이 없고 상사는 일거리를 찾아주지 못할 때,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양쪽에게 최선인 상황이 돼버린다. 파울센이 연구한 텅 빈 노동의 괴상한 점은 직원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엄청난 시간을 낭비해도 조직은 종종 그냥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상호 이득이라는 관점에서 설명된다. 굳이 현실을 들춰내서 이득을 얻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 텅 빈 노동은 끈질기게 지속되어 사람들을 지쳐 나가떨어지게 하고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 스트레스는 할 일이 너무 많은 탓에 발생할 수도 있지만 심한 지루함, 보람의 결핍, 무의미한 타성으로도 유발된다. 스트레스는 감옥 내 수감자와 교통 정체에 갇힌 운전자처럼 할 일이 아주 적은 상태의 사람들에게도 덮치다. 사실 일시적으로 바쁜 기간에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편이다. 스트레스의 축적은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과 더 관련 있다. 이것은 아마도 불만족스러운 노동자가 점점 병약해지는 이유, 즉 현대 노동 생활에 드리운 그림자에 대해 설명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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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노동의 본질과 변화

 

 전혀 힘들지는 않더라도 잔뜩 스트레스 주는 업무,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업무, 누가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업무를 포괄할 '텅 빈 노동'이라는 개념의 대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짜 노동pseudowork'이라는 적당한 용어를 찾아냈다.

 가짜 노동은 더 다양한 상황을 포함한다. 명령받은 업무, 급여 받기로 한 업무, 조직에서 요구하는 업무, 노동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노동은 아니 업무 등이 여기 해당한다. 가짜 노동을 하면 우리는 실질적인 일을 한다고 느끼지 못하면서도 계속 바빠진다. 혹은 우리가 아는 일 중에 무의미하지 않은가 의심되는 업무가 있다면 그게 바로 가짜 노동이다.

 

 동기란 인간의 모든 행동 뒤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원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진취적으로 보이고, 인정받고, 승진하고, 지루한 업무를 피하면서도 또 너무 많이 일하지 않기를 바란다. 비록 자신의 직업, 집, 자가용을 지키기 위해서 일할 뿐이라고 해도 일터에서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여겨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조직에서 가르쳐 준 일의 올바른 방식, 합리성을 고수하는 등의 규칙에 따라 게임하며 첫 출근 날부터 받은 테크닉과 네크놀로지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 체계는 뭔가 잘못되었다. 혹은 적어도 더 이상, 의도대로 잘 작동하고 있지 않다. 사람들이 더 나빠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노동시장 내 합리성과 기술이 서로 상호작용을 한 결과다. 다시 말해서 더 많은 합리성, 더 많은 테크닉과 테크놀로지의 출현은 늘 더 많은 '노동'을 창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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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사라진 의미

5장 해결책이 불러온 문제들

 

 지옥 같은 직장 생활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돼 있고, 가짜 노동은 포장 재료 가운데 하나다. 좋은 의도와 합리적 사고의 결과이기에 가짜 노동을 근절하기가 그렇게 힘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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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남에 대한 모방을 멈추자

 

 루이세는 가짜 노동을 없애고 싶다면, 우리 모두 자신의 결정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결정을 방어해야 하는 한, 이 세상을 어떻게 볼지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해 윤리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한, 책임 회피는 중단되지 않을 거예요."

 루이세는 정책, 절차, 기업의 사회적 책임 프로그램들이 주로 표피적 윤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늘 자신이 가진 합리성의 한계를 인식하려고 노력해왔다. 그 안에서 선택을 책임져야 한다. 많은 정책이 확실하고 윤리적일 것이라는 환상이 존재한다. 하지만 루이세는 그것들이 그저 '케이크 위의 장식'일 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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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우주에서 지구로 복귀하자

 

... 알베손에 의하면 이렇게 겉만 번지지르한 치장에는 몇 가지 인과응보가 따른다.

 먼저, 진짜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 두 번째 인과응보는 직원들이 냉소적이 된다는 것이다. 조직이 스스로 공언한 자기과시적 서사나 가치에 부응하지 못할 때, 회사의 내부 상황을 잘 아는 직원들은 냉소를 띠게 된다. 세 번째는 부푸는 자만심이다. "가시성을 육아에 비유하자면 강압적 양육, 자존심 북돋기"라고 알베손은 주장한다. ...

 마지막으로 그러나 결코 덜 중요하다고 볼 수 없는 세 번째 인과응보는, 과시성이 '기능하는 어리석음'을 낳는다는 것이다. ...

 이런 상황에서 진짜 일은 문화, 브랜딩, 구조에 대한 관심으로 대체되며, 아주 약간의 리더십만 보여도 별 생각 없이 존중을 받는다. 훌륭해 보이지만 시야가 좁아져, 아무도 비판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번드르르한 전망만 보이는 잘 조작된 조직의 세계로 미끄러진다. ...

 

 물론 많은 양의 진짜 일을 하는 관리직이 존재한다. 가짜 노동은 그들이 (시간이 걸리게 마련인) 결정의 합리성에서 (당장 해야 하는) 행동의 합리성으로 전환할 때 종종 발생한다. 알베손이 설명했다 ."일단 주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행동의 합리성이 결정의 합리성을 서서히 훼손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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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노동시간에 대한 관념 버리기

 

 다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바쁜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효율성으로 인해 소요된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그 생산물의 가치가 낮아진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생산물의 가치는 거기에 투입된 시간에 의해 정의된다고 애덤 스미스가 우리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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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시간과 의미 되찾기

12장 노동과 인간의 본질

 

 노동이 우리 존재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의미 있는 작업 과정에 참여할 때 안정감을 느끼고 비본질적 노동에 참여할 때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소외되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도 헤겔을 따라 소외에 대해 비슷한 논지를 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맥락에서 소외 상태란, 무엇이 진짜 노동이고 무엇이 가짜 노동인지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것을 의미한다.

 

 

 

 

... 불쉿 잡 - (번역 출간 되지 않아 읽진 못 했지만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텅 빈 노동 - 가짜 노동으로 이어지는 논의 속에서, 특히 역사문화적 기원을 찾아가는 내용이 흥미롭다. 하지만 불쉿 잡에 비해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는 느낌.

 

... 가짜 노동이 판을 치지만 동시에 진짜 노동을 외면하고 후려치는 세계...

 

... 홍기빈과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책을 더 보는 게 좋겠다. 그레이버가 벌써 세상을 떴다니, 역시 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