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 고양이의 일 - 단단

TheEnd 2022. 9. 25. 17:40

들어가며: 사이에서

 

 고양이는 살기 위해 사람 곁으로 다가감으로써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누군가가 고양이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면 그 사람 역시 가능성을 만들어낸 것이리라. 변화의 가능성,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 말이다. 하지만 캣맘의 일이 무엇이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조금 생각해보지 않고 '밥 주는 사람'이라는 편견에 가둔다면 사람의 일에 어떤 가능성이 생길까. 나는 가능성을 만들어나가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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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일째 | 새를 보고 달뜬 흰눈과 점순

 

... 우리가 자주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자신은 복잡한 감정을 지닌 존재지만 타자는 쉽게 단순한 존재라고 여긴다는 것인데, 특히 동물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새를 쫓는 고양이를 멀리서 보면 그저 사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행위에는 사람이 미처 포착하지 못한 동기가 있을 수 있다. 먹어야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일 수도, 동경하는 마음이나 호기심에서 비롯된 행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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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일째 | 옆집 부부, 고양이 밥그릇을 뒤엎다

 

 이 모든 일이 고양이 때문에 벌어진 싸움 같지만 문제는 고양이가 아니다. 고양이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입장과 고양이의 삶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싸움이었다. 나는 고양이를 위해서, 고양이를 대신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 덕분에 알게 된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사람 사이의 문제로 끌고 오는 우회 전략을 취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인간 중심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인간을 정의하는 말들을 의심하며, 고양이 곁에서, 비인간 동물 곁에서 그들을 살리는 일을 고민하고 다른 세상을 상상해보고 싶었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세상에서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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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일째 | 흰눈, 변비로 고생하다

 

 유산 상속이라 하면 어쩐지 막대한 재물을 물려받는 일만 떠올리게 되는데, 고양이들을 지켜보면서 진정한 유산 상속이란 엄마가 지닌 미생물, 영역을 구하고 지키는 방식, 배려심, 의지, 끈기 등을 비롯한 몸의 기능과 감각 그리고 고양이 사회의 문화 총체를 고스란히 전하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사람도 고양이도 전승의 역사가 몸에 새겨진 생명체라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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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일째 | 공터에 쌓인 2톤 치 쓰레기를 치우다

 

 음식을 비료로 이용하려면 퇴비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적절한 조건 아래서 천천히 분해되고 발효되어야 식물이 잘 자라도록 돕는 미생물이 만들어진다. 농사와 퇴비화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음식물쓰레기를 무작정 땅에 묻는 것은 땅을 괴롭히는 것이다. 땅에 대한 존중 없는 경작 행위는 농사가 아니라 착취일 뿐이다. 음식물쓰레기가 담겨 있던 까만 비닐봉지는 그날 공터에서 가장 많이 나온 쓰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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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일째 | 점순과 잘생긴녀석의 타협

 

 어제와 오늘은 별다를 것 없이 반복되는 나날이지만, 어제와 오늘 사이는 극적인 사건이 충분히 일어나고도 남을 시간이다. 어떤 관계는 삶의 전부를 쏟아내야 비로소 달라지지만, 어떤 관계는 단 몇 시간이나 몇 분 만에 달라진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각자가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에 맞춰 변화를 만들어낼 텐데, 멀찍이 떨어져서 그 과정을 더듬더듬 따라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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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일째 | 점순, 중성화수술을 당하다

 

 집으로 돌아와 창문에 서서 공터를 살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내 자식 내놓으라고 소리치던 점순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고양이들에게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길에서 사는 것보다 사람과 사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믿는 지역 활동가들에게 고양이들을 공터로 다시 돌려보낸 나는 결단력 없고 무책임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고양이와 사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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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며: 엔들링

 

... 고민 끝에 찾은 답은 하나다. 고양이에게 밥을 안 줘도 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다. 당연히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가서 돌봐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정확히는 사람이 밥을 주지 않아도 고양이가 고양이답게 지내며 밥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고양이가 고양이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고양이는 그저 살아가는 일만으로 존중받을 것이다. 고양이가 존중받는 세상에서는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물을 주는 내 행동도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고양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혐오 발언을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나이와 성별과 종에 상관없이 다른 생명을 존중할 것이다. 고양이에게 밥 주는 일의 의미를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 이웃과의 분쟁이나 공터를 공원화하는 과정이나, 사람과의 일에는 능숙한 데 고양이와의 일에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흰순 그리고 점순이의 아이들을 구조하려 하다가 놓아준 과정을 솔직히 쓴 것은 정말 용감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밥을 주지 않아도" 고양이가 밥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니... 이상과 현실에서의 실천이 같을 수 없지 않을까.